'좋은 전쟁`은 없다

<푸른광장>`좋은 전쟁`은 없다
[문화일보 2003-03-20 11:21]
그리스 신화에서 전쟁의 신은 아레스다. 후에 로마 신화에서 마 르스로 이어지는 아레스는 제우스와 헤라 사이에서 태어난 외아 들이다. 올림포스 12신 중의 하나이긴 하지만 ‘일리아드’의 묘 사에 따르면 흉포하고 허풍선이 같은 전사다. 그는 전투를 위한 전투를 좋아했고, 특히 유혈이 낭자한 것을 즐겼다.
아레스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의 아내인 아프로디테와의 불 륜 사건으로도 유명하다. 아프로디테와 연애하여 낳은 쌍둥이의 이름이 포보스(낭패)와 데이모스(공포)였다는 것도 생각거리다.
오랜 인류의 역사에서 아레스는 늘 분주하게 움직였던 것 같다. 인간의 운명이 시작된 이후 벌어진 하고많은 전쟁의 배후에 늘 그가 있었다. 때때로 이 세상에서 전쟁이 사라졌다고 느꼈던 것 은 평화가 순간적으로 계속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착각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어떤 전쟁이든 그 목적은 평화에 있다고 선전되었 다. 그러나 과연 그랬던가. 일찍이 T 모어는 말했다. “많은 싸움 이 지나 쌍방이 모두 피곤하여 이윽고 평화가 왔다. 한데 국민은 무얼 얻었는가. 세금, 과부, 의족(義足) 그리고 빚.”
보통 사람들은 대개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좋은 전쟁이 없을 뿐 만 아니라 나쁜 평화도 없기 때문이다. 루터가 지적했듯이 전쟁 은 인류를 괴롭히는 최대의 질병임에 틀림없다. 그 어떤 명분으 로도 포장하기 곤란한 파괴의 과학이다.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모든 악의 씨앗이다. 그런데도 전쟁은 끊어질 듯 계속 이어져 왔 다. 왜 그랬을까. ‘지상의 양식’에서 앙드레 지드는 이렇게 진단 한다. “인간이 조금만 덜 돌았더라면 전쟁으로부터 생기는 비극 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이라크 전쟁을 앞두고 ‘전쟁중독’(조엘 안드레아스)이라는 만 화책이 눈길을 끌었다. 반전 평화주의자인 저자는 미국 군사주의 의 연원과 역사적 맥락을 밝히면서, 미국이 군사주의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를 따진다. 이 책의 자료를 접하면서 새삼 많이 놀랐 다. 현재 미국을 제외한 군사비 지출 상위 25개국의 군사비 총액보다 미국 한 나라의 군사비 지출이 더 많다. 전세계 군사비의 36%를 한 나라가 지출하고 있다. 올 한 해 군사비 예산만 해도 3961억 달러에 달한다. 600억달러 규모인 러시아에 비해 6배가 넘는 수 치다. 여기에 간접적인 군사비까지 합치면 7760억달러쯤 된다는 데, 이는 작년 우리 정부 예산 총액의 7배가 넘는 규모다. 1948년 이래 15조달러 이상의 군사비를 지출했다는데, 이는 현재 미국 에 축적된 모든 부(富)의 총액보다 많은 액수다.
그 결과 군사적으로 세계를 제패할 수 있게 됐지만, 미국의 진정 한 꿈은 와해됐다는 것이 안드레아스의 진단이다. 일부 사람에게 전쟁은 돈벌이와 해외 투자를 위한 절호의 기회였지만, 보통 사 람들에게 전쟁은 늘어나는 세금과 죽음의 잔치에 지나지 않았다 는 것이다. 세금은 많이 내지만 연방정부의 세수 중 47%가 군사 비로 사용되기에, 사회복지 분야에서 구멍이 많이 생겼다는 얘기 다. 가령 지난 20년간 학생 1인당 교육비 지원액은 계속 줄어들어 학 교가 황폐해졌으며, 이에 따라 성인의 20% 이상이 구직신청서나 도로표지판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고 한다. 4300만명이 의료보험 에 전혀 가입하지 못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의료비를 지불 하지 못해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실정이다. 임신부의 20%가 임신중 정기검진 서비스를 받을 수 없어서 유아 사망률도 매우 높 은 편이다. 에티오피아가 아닌 경제 대국 미국에서 빈곤이나 기 아 때문에 50분마다 한 명의 어린이가 사망한다.
아레스의 쌍둥이 아들 이름처럼, 다른 나라에 ‘공포’를 주게 됐지만 스스로도 ‘낭패’를 보게 된 것일까. 그럼에도 또 전쟁 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와의 전쟁을 위해 의회에 요 청한 추가경정 군사비가 900억달러다. 이 돈이면 153만채의 집을 지어 600여만명에게 새로 살 곳을 제공할 수 있으며, 1억4400만 명의 임신부에게 무료 정기검진 서비스를 해줄 수 있고, 수만명의 아기를 구할 수 있다. 혹은 알코올 의존자 약 3000만명을 집중 치료할 수 있으며, 4500만명의 어린이에게 1년 동안 하루 세끼 풍성한 식사를 제공할 수 있다.
흔히 말한다. 전쟁을 거부하는 용기야말로 인간이 수행할 수 있 는 가장 큰 도덕이라고 말이다. 아레스의 공포와 낭패를 거두고, 이 큰 도덕을 어떻게 현실에서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어느 쪽이 든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에서 소망했던 대로 인간의 진정 한 꿈을 간직한 ‘우주의 아이’로 거듭날 수는 없을까. 이래저 래 참으로 안타깝고 참담한 시절이다.
/우찬제 문학비평가.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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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펩시맨 | 2005/01/14 20:15 | 잡동사니방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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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꼬깔★Κωνος at 2005/01/14 22:29
아레스가 그리스 신화에서는 다소 허풍스럽고 흉폭하게 표현되었지만 로마 신화에서 동일시 되는 마르스는
로마인들이 숭상하던 소위 '인기 많은' 신 중에 하나였다고 하지요. 그리고 아레스의 아들인 포보스와
데이모스는 둘다 비슷한 의미로 '공포, 두려움'등의 의미를 가지는데 '낭패'란 의미라니 대략 낭패로군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Commented by 펩시맨 ♤ at 2005/01/16 12:10
존속기간동안 전쟁을 자주하던 '로마'다보니 역시 전쟁의 신인 마르스를 숭상하게 되었던 걸까요?

'낭패'부분에선 아마도 저 교수분이 착각을 했나봐요.^^ㅋ
어제 저녁이었는지 오늘 새벽인지..아침에 창문을 열어보니 눈이 내렸더군요.간만에 쌓인눈을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들더군요.
꼬깔님도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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