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터섬 모아이 석상


800개가 넘는 거대한 석상들…어디에서 와서 무엇을 기다리는가

보라빛 밤하늘을 두 차례 선회한 칠레항공 에어버스 여객기가 마타베리 공항에 착륙했다. 미국 항공우주국이 우주왕복선 비상착륙에 쓰려고 300m 를 확장해 준 활주로다. 승객들은 후텁지근한 남국 밤공기를 맞으며 비행기 트랩을 내려갔다. 공항은 일주일에 두차례 내리는 관광객들을 맞느라 부산했다. 사람들은 호객을 하는 민박집, 호텔을 찾아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남미대륙에서 직선거리로 3780㎞, 가장 가까운 섬 타히티에서 4300㎞ 떨어진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육지’ 이스터섬의 어둠이었다. 한국과 정반대의 시차는 나를 혼돈으로 몰아넣었고, 나는 남십자성을 찾다가 포기하고 새벽녘에야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아침 민박집 닭울음 소리에 잠을 깼다. 고고학상 8대 불가사의 가운데 가장 미스터리로 꼽히는 섬의 아침이다. 부활절이던 1722년 4월5일 네델란드 선박이 이 섬을 발견해 ‘이스터(Easter·부활절)’라 명명할 때까지, 사람들은 이 외로운 섬을 ‘테 피토 오 테 헤누아’, ‘세계의 배꼽’이라 불렀다.

117㎢밖에 되지 않는 이 작은 화산섬에 ‘모아이(Moai)’라 불리는 거대한 석상이 800개가 넘게 서 있다. 규모는 최고 75톤에 21m. ‘육하원칙’의 그 어떤 의문사도 명쾌한 답을 얻지 못한 석상들이 이스터섬으로 해마다 20만명이 넘는 관광객을 부르고 있다. 도대체 왜? 그리고 어떻게? 3세기부터 16세기까지 1300년 동안 오로지 돌과 나무만으로 저 무거운 석상을 운반하고 세운 과정을 두고, 지구에 낙오한 우주인이 세우고 사라졌다는 말까지 나왔다.

민박집 여주인 루시아가 “해변에 석상이 있다”고 일러줬다. 수평선을 뒤로 하고 모아이가 우뚝 서 있다. 아후(Ahu)라는 제단 위에서 석상은 바다를 등진 채 산호를 깎아 만든 눈동자로 하늘을 본다. 사람들이 그 앞을 서성이며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늘과 대지를 연결하고,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리 만들어졌노라고.

전설은 이렇다. “먼 옛날 호투 마투아(Hotu Matua)라는 추장이 가족과 함께 서쪽에서 배를 타고 왔다. 모아이들은 주민을 지키는 추장과 조상신을 모시는 제단.” 이스터섬은 북으로는 하와이, 서로는 뉴질랜드를 끝으로 하는 폴리네시아 지역의 동쪽 끝이다. 몇몇 학자들이 남미 기원설을 주장했지만, 지금은 전설대로 폴리네시아 문화권이라는 학설이 신빙성을 얻고 있다.

그래서 석상들은 하나같이 바다를 등지고 주민이 사는 육지를 보고 있다. 사람들은 모아이를 움직여 신성한 제단 아후(Ahu)에 올린 것은 초자연적인 신성한 힘 마나(Mana)라고 믿고 있다.

지금 석상들은 대부분 쓰러져 있다. 전쟁에서 승리한 부족이 패배한 부족 조상신을 없애기 위해 파괴했고, 태풍과 지진이 다시 한번 파괴했다. 15개의 거대한 석상이 있는 아후 통가리키(Ahu Tongariki)는 1992년 일본 중장비회사 타다노가 크레인 두 대와 현금 300만 달러를 들여 세워줬다.

4륜구동차를 빌려 섬 일주에 나섰다. 2시간이면 일주가 가능하다. 제주도를 닮은 풍광. 여기저기 기생화산들이 둥그렇게 자리하고, 화산암을 쌓은 돌담이 길게 늘어섰다. 오는 5월 태평양 건너 제주도에서 열리는 섬문화축제에 이곳 사람들이 온다고 했다. 그들도 나처럼 놀라지 않을까, 그 너무도 흡사한 풍광에.

해안선을 따라 곳곳에 석상들이 누워서 또는 우뚝 서서 사람들을 맞는다. 섬에는 오직 석상밖에 구경거리가 없지만, 이 작은 섬에서 그렇게 숱한 석상들을 만난다는 사실 자체가 신비한 경험이다. 어디를 가건 마주치는 그 거인들은 언제나 관광객을 깜짝깜짝 놀라게 만든다.

화산 라노 라라쿠(Rano Raraku) 기슭에 이르러 그 신비는 극에 달했다. 셀 수 없이 많은 ‘미완성’의 석상들이 산기슭에 기울어져 있는 것이다. 학자들은 이곳을 채석장으로 추정했다. 이곳에서 석상을 깎아 온 섬에다 석상을 세웠다고. 석상은 후손을 살피는 눈동자가 있어야 완성된다고 했다. 이곳 석상들은 눈동자를 넣을 구멍이 없다. 땅 위로 솟은 부분만 어른 키 두 배인 거인들이 눈동자 없는 눈으로 관광객을 쳐다봤다. 그 퀭한 눈에, 너무도 자연스러운 모습에, “조금 있다가 점심 먹으러 갔던 인부들이 돌아올 것 같은” 느낌은 나뿐만은 아니었다. 섬 전체에 있는 석상은 모두 887개, 이곳 채석장에 있는 미완성품은 489개다.

섬 북쪽 아나케나 해변은 한가롭다. 전설의 추장 호투 마투아가 상륙한 곳이다. 타히티에서 조류를 타고 온 야자수가 숲을 이뤘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거인들의 눈을 피해 남국의 파도에 몸을 싣는다. 전설도, 미스터리도 그때에는 잠시 멈춤.

매일같이 저녁 무렵이 되면 사람들은 민박집 옆 모아이 앞에 모여 석양을 맞았다.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고 거인의 실루엣이 보라빛 하늘을 가리면서 사람들 얼굴에 서운함이 물들었다. 석양이 꺼지면 또 하루가 저물고, 그러면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겠지. 마지막 밤, 언제 다시 올 지 기약 못할 섬을 떠난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거인의 그늘 아래에서 이스터 섬의 비극을 이야기했고, 추억을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 남십자성 아래로 내일 우리를 데려갈 항공기가 선회하고 있었다.

출처 : 조선일보 200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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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펩시맨 | 2003/10/03 20:30 | 역사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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